20세기 소년
What the book? 2008/10/07 21:49나이가 차 친구들이 모두 결혼하는데도 누나가 맡기고 간 조카 칸나 키우기에만 힘을 쏟는 엔도 켄지. 어느 날 신문에서 소시적 친구의 부음을 접하고, 그가 죽기 전 남긴 엽서를 통해 어떤 마크를 발견한다. 사실을 따라가던 그는, 누군가 어렸을 적 자신과 어울려 놀던 친구들과 만든 비밀 결사의 내용을 모방해 세계를 멸망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언의 서'의 존재를 아는 아홉 친구는 각지에 흩어져 있다가 이를 계기로 모이게 되고, 비밀기지 해체 당시 아지트에 있던 것을 모아 묻은 타임캡슐을 판 뒤 "다음에 이걸 파낼 때는 지구에 위기가 닥쳤을 때"란 말을 상기해 낸다. 그들은 이내 악의 조직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고 마크를 찾아올 것을 다짐한다.

'뭐 이런 만화가 다 있어!' 그것이 제가 처음 <20세기 소년>이라는 만화를 접했을 때 느낀 감정입니다. 사실 많은 독자들이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 중 <몬스터>나 <마스터 키튼>을 먼저 접했던 것에 반해 저는 <20세기 소년>을, 그것도 P2P에서 X-Japan의 '20th Century Boy'를 찾다가 접하게 된 그런 작품입니다. '본격과학모험만화' 라는 다소 유치한 수식어를 떡하니 적어놓은 만행을 저지르기는 했으나 1권의 첫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그 책을 놓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에 다시금 놀라게 됩니다. 듣보잡 만화가의 만화가 이 정도라니...(우라사와 나오키를 듣보잡이라고 생각했다니...)

만화계에서는 알아주는 스릴러의 거장답게 나오키의 스토리 라인은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입니다. 헐리웃 영화에 버금가는 박진감과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점점 증폭되는 미스테리의 흡입력은 윌리엄 아이리쉬의 '환상의 여인'을 읽었을 때와 비슷합니다.

락그룹 T-Rex의 명곡 '20th Century Boy'이 타이틀로 선택된 만큼 <20세기 소년>은 1970년대의 정서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 시절을 살았던 어린이들이 성장해서 겪는 뜻하지 않는 사건들은 모두 그들이 어렸을 때 꿈꾸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악몽으로 변합니다. 일개 편의점 주인으로 일하는 켄지가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모두 자신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되면서 이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켄지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정체불명의 '친구'라는 인물과 그의 추종자들의 대립구도로 전개되죠.

그러나 <20세기 소년>은 그동안 보여져왔던 소년만화의 전형적인 공식을 피해갑니다. 정의가 승리하고 악은 몰락한다는 소년만화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마저도 <20세기 소년>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세계를 말살시키려는 친구의 음모에 맞선 켄지 일행의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제 2막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작가는 정의의 주인공들을 전면 교체하는 초강수를 택하는데, 켄지의 조카인 칸나가 성장해 전개되는 이야기는 점점 더 흥미를 띄게 되지만,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이렇게 <몬스터>나 <마스터 키튼>에서 시작한, 끊임없이 독자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스토리 텔링은 이미 일정한 경지를 넘어섰습니다. 마치 추리소설처럼 다음권이 나오면 처음부터 전부 다시 복습을 해야 할 만큼 전후 에피소드간의 연관성이 높으며 여러 가지 복선의 활용도와 짜임새도 탄탄합니다.
다만, <20세기 소년>에서 가장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후반부의 마무리죠. 이는 <몬스터>에서도 제기되었던 문제로서 한 작품을 마무리 짓기 전에 다른 작품의 연재에 착수하는 작가의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특히나 <20세기 소년>의 경우는 22권으로 완결아닌 완결을 지은 상태에서 새로 <21세기 소년>이라는 '최종장'형식의 사족을 내놓아 부족한 결말에 대한 해답을 내놓고는 있으나, 초반부의 굉장한 서스펜스가 후반부에 이르러 다소 느슨해 졌다는 지적은 벗어날 수 없을 듯 합니다.
그럼에도 <20세기 소년>은 근래에 보기드문 수작임에 틀림없습니다. 드라마 아일랜드에서 윤여정 아줌마의 대사 중에 '남자는 추억을 먹고사는 동물이야.'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제게도 해당되는 말인데, 1970년대의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이라면 과거를 회상하는 켄지 일행의 추억속 장면들에서 정서적으로도 동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절대로 대충 읽을 수 없는, 그리고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이 읽어야 할 만화로서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작품이죠.
이 작품의 실사판 영화 1부가 개봉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군요.

유사품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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