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 최고의 '공공의 적'은?

스뽀오츠 구락부 2008/10/24 10:08
프로야구 원년 한국시리즈부터 맞붙었던 두산과 삼성은 당시 숙적의 라이벌이었습니다. 비운의 투수 이선희 선수가 OB의 김유동 선수에게 만루홈런을 맞고 쓸쓸히 마운드를 내려올 때 '원조 불사조' 박철순 선수와 현재 두산의 감독인 김경문 포수는 감격의 우승 포옹을 나눴습니다. 그 후 26년이 지난 지금, 대학 시절 한 방을 쓰며 같은 유니폼을 입고 공을 던지고 받던 김경문 포수와 선동열 투수는 달감독과 선감독이 되어 포스트시즌에서 만났습니다. 둘은 이미 지도자로서도 WBC에서 감독과 투수코치로 호흡을 맞췄던 적이 있는, 아주 절친한 사이지요. 감독 사이의 기류가 선수들에게까지 전염되었을까요?

사진출처: 일간스포츠


이번 플레이오프에선 그 이전의 포스트시즌에선 볼 수 없었던 훈훈한 장면이 많이 연출되었습니다. 2차전 때 이대수 선수가 '몸에 맞는 볼'인 척 하며 쓰윽 나가려고 할때, 진갑용 선수가 웃으며 이대수 선수를 잡더니 타석으로 밀치는 장면이나 5차전 때 양준혁 선수가 안타를 치고 1루에 진루하자 오재원 선수가 공손히 모자를 벗으며 대선배에게 인사하고 그 대선배는 오재원의 엉덩이를 두드려주며 격려해주는 모습, 심지어 김현수는 자신의 타구에 맞은 차우찬에게 사과를 하기까지 참 보기에 좋은 모습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한국 야구를 짊어지고 나갈 두 영건들, 아기곰 김현수와 제 2의 김별명을 꿈꾸는 박석민의 '박석민 폭행사건'은 너무나도 유쾌한 폭행사건 이었죠.

'브콜돼' 박석민 폭행사건의 전모

하지만 오늘 너무 짜증나는 기사를 한 개 봤습니다.

'공공의 적' SK와의 한국시리즈는 '전쟁'  (링크의 주소를 보시고 잘 생각하신 후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이 링크는 소화불량이나 짜증, 분노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작년 한국시리즈는 정근우 선수가 3루로 뛰던 이종욱 선수의 발목을 잡고, 채병룡 선수가 김동주 선수에게 빈볼을 던지고, 김동주 선수는 만류하던 김민호 코치를 밀치는 등 여지껏 제가 봤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중에서 가장 진흙탕 시리즈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와 다릅니다. 그 때의 질타로 정근우 선수는 '제대로' 수비를 하고있고, 무엇보다 정근우, 김광현, 이진영, 정대현 등 SK의 선수 네 명이 지난 올림픽 때 금메달을 따는데 큰 기여를 하며 지금의 야구붐을 일으키는데 일조를 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물론 지금 기여를 했다고 그 때의 잘못이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기사는 SK 선수들이 또 다시 뛰는 주자의 다리를 잡고, 빈볼을 던지고 할 때 나와도 되는 기사입니다. 많은 야구팬과 야구인들이 기다려온 일 년 야구농사의 수확의 축제를 '전쟁'의 대결구도로 몰아가서 무엇이 좋을까요?


SK 와이번스는 얄밉게 야구를 잘하는 팀입니다. '야신' 김성근 감독을 데려오고, 김성근식 현미경 야구와 팀 내의 주전경쟁구도를 가장 확실하게 자리잡은, 그래서 남들 다 쉬는 올림픽 브레이크나 패넌트레이스가 끝난 지금도 지옥훈련을 하고 있는 그런 구단입니다. 또한 감독 자신부터 밀려나지 않기 위해 10년 전 신장암 수술을 1000승을 달성하고 나서야 고백했던 그런 독종 감독입니다. 그런 감독이 조련한 SK 선수들의 눈빛은 이현세 화백의 '지옥의 외인구단'을 연상케 합니다. 그 아비에 그 자식이랄까요? 다른 팀 선수들은 몸에 이상이 있으면 바로 팀닥터를 찾아가지만, SK 선수들은 몸이 아프면 그걸 감춘다고 합니다. 주전 경쟁에서 밀릴까봐 몸이 재산인 프로선수들이 자신의 불편한 몸을 감출만큼 팀 내의 주전경쟁은 극심합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SK 와이번스는 선수 뿐만 아니라 프런트도 아주 열심히 하는 팀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인천만큼 야구에 애증이 많은 도시가 있을까요? 인천고, 동산고, 제물포고 등 '과거의 야구명문'이 있는 도시이고, 우리나라에 가장먼저 야구가 전파된 도시입니다. 하지만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부터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SK 와이번스까지 무려 다섯 번이나 팀 간판이 바뀌었던 도시가 인천입니다. 특히 '이제야 제대로 된 팀을 만났구나' 하며 현대 유니콘스를 반겼던 인천팬들에게 말 한마디 없이 연고지를 수원으로 옮겼던 현대 유니콘스의 만행에 치를 떨며 '다시는 인천팀을 응원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던 인천 야구팬들의 마음을 돌려놓느라 SK는 지금도 가장 많은 팬 행사를 치루는 팀입니다. 이만수 수석코치의 '팬티 세레머니'로 대표되는 SK 와이번스의 팬사랑은 다른 팀들의 프런트에도 하나의 귀감이 되고 있으며 SK 와이번스가 표방한 스포테인먼트는 타 팀의 프런트에게도 큰 자극이 되고 있습니다.


작년 한국시리즈의 앙금이 남아서 였을까요? 올 시즌 시범경기 중 야신은 김경문 감독을 겨냥해 "올림픽 예선에 나섰던 (SK) 투수들이 허리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대표팀에 보냈더니 고맙다는 인사는 못 받고, 선수 관리도 잘못했다'며 포문을 열었고, 이에 달감독은 "그럼 직접 대표팀을 맡으시라"며 맞받아 쳤습니다.

하지만 올림픽이 진행되는 동안 SBS의 해설을 맡았던 야신의 달감독 칭찬 릴레이는 계속 이어졌고,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에 열린 첫 경기에서 달감독은 야신을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두 팀 간의 앙금은 사라진 것 처럼 보입니다. 무엇보다 작년 진흙탕 시리즈의 시발점이었던 정근우와 이종욱이 올림픽 기간 중 호흡을 맞추며 동료의식을 나누어가졌고 일본과의 준결승전 중 정근우의 홈인 때 가장먼저 뛰어나와 정근우를 맞이하는 하이파이브를 나눴던 사람도 육상부 주장인 종박이었습니다. 올림픽 이후에 계속된 페넌트레이스 후반기에 보여줬던 김현수의 불방망이도 사실은 김현수가 SK 덕아웃으로 놀러갔다가 친한 선배인 최정의 방망이를 보고 거의 훔치다시피 한 개를 가져와 그 방망이로 롯데와의 3연전에서 15타수 8안타 8타점 불방망이를 휘둘러 싹쓸이의 일등공신이 되었다고 하네요. 두 팀이 아직도 '전쟁'을 치르는 그런 팀이라면 김현수같은 새까만 쫄따구가 겁도없이 상대팀 덕아웃에 놀러갈 수 있었을까요?


1993년도 연세대 농구부는 무적이었습니다. 90 문경은, 91 이상민, 92 우지원, 김훈, 석주일로 구성되었던 팀에 93년도 서장훈이 가세하면서 더이상 대학농구에서는 상대를 찾을 수 없는 팀이 되었죠. 농구 실력 못지 않게 준수한 외모로 왠만한 연예인들보다 높은 인기를 구가한 팀이었지만, 상대적으로 부족한 전력이었던 고려대 91 이지승, 92 전희철, 김병철 93 양희승, 박훈근, 박규현을 응원하던 사람도 꽤 많았었습니다. 스포츠는 약팀도 강팀을 이길 수 있는 - 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스포츠를 제외하고 그런 일은 드라마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란걸 알게 되면 - 거의 유일한 수단이며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죠. '단호한 결의'가 생긴 강백호가 있는 북산이 '왕자' 산왕을 이기는 장면에 열광하는 모습은 당연한 겁니다.



플레이오프 6차전이 끝난 지금, 두산과 SK는 흡사 북산과 산왕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두 팀 다 즐거운 가을축제를 즐기기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올해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금메달 보다 일본에게 두 번이나 이겼으며 - 저는 이게 훨씬 중요합니다 - 야구장을 찾은 관람객이 500만이 넘은,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의미있는 해 입니다.

이런 시점에 '파이팅'만을 강조하며 '타도 SK'라는 둥 두 팀의 케케묵은 대결구도만을 강조하는 기사를 쓰는 기자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기사 말미에 '야구전문기자'라고 당당히 밝히는 기자가!!!


도대체 조선이라는 이름이 붙은 신문사들은 하루라도 대결구도를 만들지 않으면 큰일이 날까요? 네 글자 조선에서는 단 하루도 '좌파'라는 단어를 보지 않는 날이 없는 신문을 만들더니, 다섯 글자 조선에서는 이제 가을축제까지 싸움판으로 만들려고 하네요. 만약에 한국시리즈에서 삼성과 롯데가 만난다면 이 기자는 아마 99년 라면 투척 사건까지 쓸 것 같습니다. 그 라면 국물이 우러나고 우러나 사골국물이 된 지금에나 그 이후라도.

'에이스 킬러 남훈'이 에이스인 풍전은 북산을 상대로 졌습니다. 그리고 두산은 풍전도 아니고 더더욱 '에이스 킬러'는 없습니다. 아무리 상대팀의 전력이 월등하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설사 진다고 하더라도 최선을 다한 좋은 경기를 하면 그걸로 팬들은 만족합니다. '파이팅', '기싸움' 이라고 교묘하게 치장을 한 더러운 승부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글을 보고 기뻐할 팀도, 야구 선수도, 야구 팬도 없습니다. 정정당당하지 않은 스포츠는 이미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글쓴 기자에게는 SK가 '공공의 적'이겠지만 야구팬들에게는 이런 기사를 쓰는 당신같은 기자가, 그리고 이런 기사를 기사라고 내보내는 신문사가 야구 팬들의 '공공의 적'임을 제발 좀 아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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