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불편한 진실

스뽀오츠 구락부 2009/05/11 13:37
1994년 박찬호 선수가 한국인 사상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팀인 LA Dodgers에 입단하였을 때, LA Dodgers는 대한민국 온 국민의 홈 팀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토미 라소다 감독은 지금의 김인식 감독 이상의 인기를 얻으며 우리나라의 대표 감독처럼 여겨졌었고, 온 국민은 파란색 져지에 열광했었습니다. 그 후, 김병현 선수가 랜디 존슨, 커트 실링이라는 최강의 원투 펀치의 마무리를 담당하던 Arizona D-Backs에서 월드시리즈 챔피온 반지를 낄 때, 온 국민의 홈 팀은 다시 Arizona D-Backs로 옮겨져 있었습니다.

박찬호 선수의 MLB 데뷔 10년 후. 이승엽 선수는 아시아 홈런왕 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프로야구 팀인 지바 롯데 마린스에 입단하였고, 그 2년 후 드디어 일본의 국민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그것도 부동의 4번 타자였던 고쿠보를 밀어내고 4번 타자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였습니다. 당시 한, 일 스포츠 찌라시의 호들갑은 말할 것도 없고(우리나라의 스포츠 찌라시의 설레발은 일본에 비하면 애들 장난입니다) 국내의 케이블 방송사도 엄청난 중계권료를 NPB에 지불하며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사람을 해설자로 불러들이고, 온 국민에게 경로당 한담같은 해설을 몇 년 째 방송하고 있습니다. 물론 요미우리는 '좋은 편', 요미우리를 상대하는 팀은 '나쁜 편'이 되서 말이죠. 특히 한신 타이거스 같은 팀과 경기를 할 때의 편파판정은 제가 느끼기에는 거의 WBC나 올림픽에서 국내 해설진들이 했던 수준입니다. 자,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의문. 단지 이승엽 선수가 뛰고있다는 이유 만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과연 '우리 편'이 되어야 할까요?

요미우리 자이언츠 사진출처: Wikipedia


다들 잘 아시다시피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모기업은 일본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요미우리 신문사(讀賣新聞) 입니다. 그리고 이 신문사의 편집 성향은 우리나라에 비유하자면 한 마디로 딱 '조선일보' 입니다. 우리나라에 조중동 트리오가 있다면 일본에는 요미우리 신문과 산케이 신문이라는 콤비가 있죠. 참고로 산케이 신문은 일본의 2차 세계대전의 정당성을 밝히는 역사 교과서를 만든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출판사의 모기업 입니다.

요미우리 신문 본사 사진출처: Wikipedia


아, 물론 정치와 연계해서 스포츠의 호불호를 따지는 것은 '난 경상도 사람이니 기아 타이거즈는 절대 응원하면 안돼' 내지는 '내 고향이 광주인데 어떻게 내가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할 수 있어? 난 눈에 흙이 들어가도 그렇게는 못해' 라는 생각 만큼이나 웃기는 생각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일본, 다시 말해서 한일전 이라면? 만약 이번 WBC에서 한국이 일본과 맞붙지 않고 올라가서 준우승을 했다면, 작년 올림픽에서 일본이 아닌 다른 상대를 누르고 결승전에 올랐다면 지금의 야구 열기와 같은 열기를 느낄 수 있었을까요? 제가 단언컨데 그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을 누르고 올라갔기에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겁니다. 김별명이나 꽃범호는 그렇다쳐도 봉미미에서 봉열사로 단숨에 팬들의 뇌리에 각인을 시킨 봉중근이 만약 미국전에서 그런 호투를 펼쳤다면 우리의 반응은 그냥 '잘했네, 수고했어' 정도였을 겁니다. 하지만 상대가 일본이었기에 미미한 선수라는 봉미미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에서 봉중근 열사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겁니다.

다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이야기로 넘어와서...
일본이 한창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며 아시아 제패의 야심을 키우면서도(혼네) 겉으로는 미국최고!를 외치고(다테마에) 있을 때, 당시 요미우리 신문사의 사주였던 쇼리키 마쓰타로(正力松太郞)는 관동대지진으로 사옥이 소실된 요미우리 신문사를 부흥시키기 위해 라디오판 신문, 일요 석간 발행 등 다양하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사세를 키워나갔고, 1934년 일본 최초의 직업 야구단(대일본도쿄야구클럽: 大日本東京野球倶楽部)을 창단하여 베이브 루스, 루 게릭 등등 당시 최고의 메이저리그 선발팀과의 친선경기로 온 국민의 시선을 집중시켰습니다. 문제는...

이 쇼리키 마쓰타로라는 인물의 정치 성향입니다. 쇼리키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단숨에 일본에서 가장 많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이 된 요미우리 신문을 통해 일본의 침략전쟁을 대동아전쟁으로 미화하고 관동대지진으로 사망한 무고한 한국인, 중국인의 죽음에는 외면으로 일관했으며, 한국의 위안부 문제 역시 '직업여성이었다'라는 뻔뻔한 대답으로 일관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일본의 패망 후 A급 전범이 된 그는 CIA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석방된 후 친미주의자로 돌변했지만 그의 야심은 더더욱 마음 속 깊은 곳으로 숨겨졌을 뿐 없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후 부도칸(日本武道館) 건립에 앞장서서 일본의 무술(유도)를 전세계에 퍼뜨렸으며, 일본 최고의 야구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통하여 극미(克美)와 대동아공영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해설자와 온 국민이 열광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라는 팀은 일본의 2차 세계대전 미화와 아시아 정복의 야심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일본 우익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인 팀입니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나라는 쇼리키의 유훈을 기리는 '쇼리키 마쓰타로상(正力松太郎賞)'을 제정하여 일본야구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매년 상을 줍니다. 미국 투수들에게 사이영 상 정도로 권위가 있는 이 상은 수상자가 오 사다하루, 사사키 가즈히로, 마쓰이 히데키, 스즈키 이치로, 하라 다쓰노리 등등,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이 상의 무게를 알게 될 겁니다.

또한 이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성향은 요미우리의 선수 구성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한 때 박찬호 선수의 LA Dodgers시절 감독을 했었던 데이비 존슨 감독이 처음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입은 외국인이었고,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야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첫 외국인 용벙이 1975년도에 생겼다는 건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만 볼 수 있는 순혈주의의 가장 확실한 예라 하겠죠(일본 최초의 외국인 용병은 1953년도에 마이니치 오리온스에 입단한 키키 킬리 였습니다). 사실 그 이전에도 외국계가 있긴 했었습니다. 일본 프로야구 최초의 퍼팩트 게임을 달성했고, 5대 감독까지 역임했던 후지모토 히데요(藤本英雄)는 사실 한국계였습니다만, 일본으로 귀화한 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고 나중에는 감독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이승엽 선수가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한 뒤 개막전 4번 타자가 유력해 졌을 때, 일본 언론들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사상 3번째 외국인 4번타자가 탄생했다'라고 호들갑은 내면을 알고 보면 그리 이상할 일이 아닌 겁니다. '일본인이 최고이다'를 모토로 삼고 있는 팀에서 외국인 4번 타자, 그것도 한 때 그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의 식민지였던 나라 출신의 4번 타자를 영입한다는게 꽤나 속쓰린 일이었을 겁니다. 아직도 일본에선 '요미우리 자이언츠'라는 말 보다 '교진(巨人)' 이라는 애칭이 더 많이 사용되는 건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진정한 세계 야구계의 거인이 되기를 바라는 일본인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이승엽 선수가 뛴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편' 내지는 '좋은 편'이 되는 상황이 답답하여 몇 자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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