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봉투라도 드려야 되나요?
내 삶의 폴라로이드 2010/03/06 23:21"부끄러운 과거를 통해 공교육의 현실을 조명하는 시대극"
2004년. 지금의 이정진과 한가인을 만든 말죽거리 잔혹사를 본 한 네티즌의 20자평 입니다. 이제는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제 생각이 완전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어제 한 선배를 만나면서 였습니다.
평소에 술을 잘 못하는 그 선배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어제 점심 무렵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술이나 한 잔 하자는 선배의 말에 별 생각없이 퇴근 후 그 선배를 만났습니다. 못하는 소주를 연달아 세 잔이나 털어넣더니 그 선배가 처음 꺼낸 말은 "우리 애 미국이나 캐나다로 보내야겠다" 였습니다. "왜요? 애가 학교 공부를 못 따라가요? 애 공부 잘하잖아요." "아니 그런게 아니라..." 하면서 그 선배가 털어놓은 말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습니다.
사건은 입학식 다음날. 학교에 등교를 하자마자 한 친구가 담임 선생님에게 매타작을 당하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이유는 머리가 길어서!!!
까만 교복에 알머리를 하고 다녔던 저로서는 '고속도로'(예전에는 학생부 선생님들이 바리깡을 들고 나타나 학생들의 머리에 길을 냈었습니다. 그걸 우리들은 고속도로라고 불렀습니다)가 생각나서 웃으면서 "그려려니 해. 선생이 좀 다혈질인가 보지." 하고 넘어가려 했습니다. 그러자 그 선배가 하는 말: "야! 너는 네 자식이나 조카가 별로 머리가 길지도 않은 데 괜히 시범 케이스로 걸려서 남들 다 보는데서 싸대기 맞는다고 생각해봐. 어떻게 할 것 같아? 넌 아마 그 선생 죽인다고 날뛰었을껄? 더구나 따로 부른 것도 아니고 아침에 애들 학교 오자마자 싸대기를 날리고 수업하는 중간에 들어와서 바리깡으로 애들 머리에 고속도로 내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형 애기가 맞은 것도 아니잖아." "계속 들어봐." 그러더니 그 다음 날은 종례 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오시는 것을 못 본 아이들 두 명이 담임 선생님에게 주먹과 손바닥으로 얼굴을 수 차례 맞았답니다. "뭐야?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아직도 그렇게 애들을 때리는 선생이 있어?" "계속 들어 보라니까." 하면서 계속 이어진 선배의 말. 야자(야간 자율학습)는 안 빼주고 학원 때문에 야자를 빼려면 학원 영수증을 가져오고 부모님 중의 한 분이 확인 전화를 해야하며 그나마도 수요일 하루만 빼주겠다고 했답니다. 그것도 다음 주 월요일(3월 8일)까지 영수증을 가져와야만 된다고 합니다. "학교 정책이면 그럴 수 밖에 없잖아" 라는 제 말에 그러면 자기도 이해를 하겠는데 다른 반 중에 어떤 반은 야자를 모두 빼주는 반도 있고 하는 걸 보니 학교 정책은 아닌 듯 하답니다. 학원 수업을 모두 수요일로 옮길 수도 없고... 뭐하자는 건지 듣는 입장에서도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압권은 반장선거.
입후보자가 단 한 명 이었답니다. 그리고 찬반투표. "요새는 반장 뭐 그런거 하면 학생부에 가산점인가 뭐 그런거 올라가서 서로 하려고 하지 않아?" 라고 물어보니 그래서 자기도 이상하게 생각했다며 얘기를 계속 이어갑니다. 반장 입후보자가 단 한 명 이기에 찬반투표를 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애들의 수군거림을 들어보니 원래는 후보가 두 명 이었는데 한 명은 담임 선생님 임의대로 배제하고 그냥 한 명이 입후보 한 것으로 했답니다. 그게 가능한 이유가 공개적으로 입후보를 하게 한 것이 아니라 반장을 하고 싶은 학생은 교무실로 찾아와 개인적으로 말하라고 했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담임 선생님 임의대로 입후보한 학생을 배제하게 되는 일이 가능한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진짜 코메디는 지금부터!!!
반장으로 선출된 학생과 담임 선생님이 교무실로 갔다가 반장만 돌아오더니 부반장 누구1, 회계 누구2, 서기 누구3을 지명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다시 담임 선생님이 오시더니 "부반장으로 지명된 학생은 성적이 50%를 넘지 못하기 때문에 안되겠다. 누구4가 공부를 잘 하니 누구4가 부반장을 해라." 이 때 누구3이 "선생님. 저 서기 하기 싫은데요?" 하자 "까라면 까야지 뭔 잔소리가 많냐? 서기는 그냥 너 누구3이 한다. 그리고 반장 부반장 너희는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반 친구들 전부에게 피자를 쏴야 된다. 일단 반장부터 월요일에 학생들에게 피자를 쏴라." 하고는 유유히 교실을 빠져나갔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반장으로 뽑힌 학생은 같은 재단에서 올라온 학생이었고, 부반장이 된 누구4가 원래 반장으로 입후보한 학생이었답니다. 누구1은 아무 이유없이 공부로 반에 못드는 학생으로 밝혀졌고, 누구3은 하기싫은 서기를 해야 하며, 누구4는 입후보는 했는데 투표도 못해보고 부반장이 되었습니다. 만약에 반장으로 선출된 학생과 누구4의 집안이 반 학생들 전부에게 피자를 쏘는게 힘든 형편이면 그 학생들은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서 그 선배가 하는 말은 제 마음을 답답하게 했습니다. "이건 어디가서 얘기하지 마라. 재단 이사장이 나경원 아버지고 나경원이 재단 이사다. 너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뭘 할 수 있을 것 같냐? 혹시라도 이 말이 다른데 나왔들 때 그 사람들이 누가 그랬는지 찾으려고 덤비면 못찾겠니? 나는 괜찮다. 나는 혹시나 무슨 일을 당해도 상관없어. 정말로. 그런데 그러면 내 아들은 어떻게 될 것 같니? 애 엄마한테 돈봉투라도 들고 학교 찾아가라고 해야 되는건지, 아니면 저런 학교에 애를 계속 보내는 것보다 차라리 유학을 보내야 하는건지 영 판단이 안 선다."
현수가 '정문고'로 전학을 한 해는 1978년 입니다. 준석과 동수, 상택과 중호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1981년 입니다. 30년 동안 우리나라는 '수출 100만불 달성' 플랭카드가 붙던 나라에서 올림픽과 월드컵을 유치하고 동계 올림픽에서 종합순위 5위에 오르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30년 전이나 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은 게 하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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